ING생명보험의 매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부터 금융지주사들의 비금융권 인수합병(M&A)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며 매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지만 유력 인수후보들이 인수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금융업계는 그동안 KB금융과 신한금융 등이 ING생명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M&A를 통해 계열사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수익성 확대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아왔다. 그런데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움직임은 ING생명 M&A를 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실상 M&A 포기 움직임에 가깝다는 게 M&A업계의 평가다.
3일 M&A업계에 따르면 신한생명은 12일 10면 만기 15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후순위채는 만기가 5년 이상 남았을 때 발행 금액의 100%를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는 채권을 말한다. 신한생명이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설립 이후 처음이다.
신한생명의 채권발행은 지급여력제도(K-ICS)와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지급여력(RBC)비율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IFRS17이 도입되면 보험사의 부채가 시가로 평가되면서 부채가 늘어나기 때문에 미리 자본을 쌓지 않으면 RBC비율이 하락하게 된다.
신한생명의 올해 1분기 기준 RBC비율은 173.7%로 전분기보다 1.7%포인트 하락했다. 금융당국은 RBC비율을 150%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RBC비율이 100% 이하로 떨어지면 제재조치를 취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신한생명의 지난해 말 RBC는 175.41%이며, ING생명은 455.33%라는 것이다. 신한생명이 ING생명을 인수하게 되면 RBC는 약 300%가 된다. 후순위채 발행과 같은 자본확대가 필요없다.
M&A업계 한 관계자는 "신한생명의 후순위채 발행은 ING생명 인수없이 자체적인 자본 확충을 통해 RBC를 높일 수 있게 됐다"며 "ING생명 M&A에서 한발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B금융은 ING생명 인수에 대해 사실상 포기를 선언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에서 진행된 지주사 이사회 워크숍에서 '보여주기식 M&A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내용의 KB금융 M&A 전략 의견을 밝혔다.
KB금융이 ING생명을 인수하면 비은행부문의 경쟁력은 강화할 수 있지만 무리해서 높은 가격의 인수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KB금융은 최근 ING생명의 인수 유력후보로 꼽혀왔다는 게 이유다.
무엇보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는 ING생명 지분 59.19%에 대해 2조5000억원에서 3조원 가량의 매각가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윤 회장의 발언은 ING생명 인수에 대한 언급일 가능성이 높다.
KB생명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지하고 제3보험 판매 축소에 나설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 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KB생명이 KB손보와 겹치는 상품을 줄이겠다는 것이지만 KB생명에 변액보험과 연금보험을, KB손보에 실손보험과 제3보험을 집중하는 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M&A업계 관계자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이 올해 초까지 ING생명의 M&A에 관심을 갖았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MBK파트너즈가 제시한 2조5000억원에서 3조원에 달하는 인수대금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움직임이 M&A 대금을 낮추기 위한 움직임인지, 사실상 포기에 가까운 것인지는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현재까지 움직임만 놓고 본다면 ING생명 인수 없이 자체 경쟁력 확보를 꾀하고 있어 사실상 포기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M&A업계 관계자도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M&A의 경우 가격 협상이라는 시장 특수성 때문에 상대방을 속고 속이며 매각대금을 조율하는 일이 많다"며 "한 가지 확실한 점은 ING생명의 매각가가 현재 예상되는 금액보다 낮아지지 않는 한 ING생의 매각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