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19일 별세...한국 재계의 큰 별이 지다
[부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19일 별세...한국 재계의 큰 별이 지다
  • 박가희 기자
  • 승인 2020.01.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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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향년 99세로 19일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다. 장례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고자 그룹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명예장례위원장은 이홍구 前국무총리, 반기문 前UN사무총장이 장례위원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맡을 예정이다.

“기업 경영은 삶 그 자체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辛格浩) 명예회장은 식민지시대에 일본 유학 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하여 韓·日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韓·日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쇼핑,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 등을 잇달아 창업하거나 인수하면서 롯데그룹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만들었다.

# 창 업
신격호 명예회장은 1921년 10월 4일(음력)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부관 연락선을 타고 도일하여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외지에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하고,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 딛게 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한 채 문을 닫게 되는 등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뛰어난 안목,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여 오늘날의 롯데 신화를 창조해 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얼마나 신용을 중시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辛 명예회장은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을 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오나 어떤 경우에도 우유 배달시간이 워낙 정확해 유명했다고 한다. 소문이 나다 보니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辛 명예회장은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했다고 한다.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이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일본롯데 젊은 시절.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일본롯데 젊은 시절.

이러한 辛 명예회장의 신용과 성실성을 지켜본 ‘하나미쓰’라는 일본인이 사업을 해볼 것을 제의하며 당시 돈 5만 엔을 선뜻 내 주었다. 이 돈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미군기의 폭격으로 공장을 가동해 보지도 못하고 전소되고 만다. 어렵게 재기를 했으나 다시 폭격을 당해 전소되어 버렸다. 그래도 하나미쓰의 辛 명예회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신 명예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일 년 반 만에 이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 주었다고 한다.

# 롯데의 탄생
1940년대 초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 우유배달 등의 일을 하면서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고학했던 청년 신격호는 첫 사업이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지만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1년도 채 안되어 적지 않은 돈이 들어온다. 사업가 신격호의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은 일본에서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청년 사업가 신격호도 타고난 사업 감각을 발휘해 껌 사업에 뛰어든다. 워낙 껌이라면 없어서 못 팔던 시절이라 신격호 명예회장은 큰돈을 번다. 그는 드디어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된다. 이때 회사 이름 「롯데」가 탄생한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온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감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천재적 마케팅 감각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롯데는 풍선껌 사업을 강화해 아예 풍선껌을 작은 대나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했다. 당시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터라 롯데의 풍선껌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껌이라는 상품자체가 식품이라기보다는 심심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장난감이라는 제품의 핵심가치를 간파한 것이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일본롯데 젊은 시절.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일본롯데 젊은 시절.

이벤트와 미디어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천만 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결과는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내고 자신 있게 밀어붙인 사람은 바로 신격호 명예회장 본인이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천재적 마케팅 감각은 경영학 강의와 교재에서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는 그의 감수성과 창의성에서 나온 것이다.

# 초콜릿 시장을 제패하며 종합 메이커로
1961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제조방법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辛 명예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고 이것이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으로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 고국투자 - 현해탄 경영의 시작
“새롭게 한국 롯데 사장직을 맡게 되었사오나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습니다.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1967년 한국 롯데제과 설립 당시 신격호 롯데회장 인사말)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격호 명예회장의 꿈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기업보국(企業報國) 이라는 기치아래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주기 위한 계획에 착수해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모국투자를 시작하였다.

1965년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입국.
1965년 롯데 신격호 명예회장 입국.
1980년대초 롯데제과 양산초코파이라인 순시.
1980년대초 롯데제과 양산초코파이라인 순시.

롯데제과에 이어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現 롯데푸드)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하였다.

# 관광 불모지에 대규모 호텔업 투자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고층 빌딩으로 1천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6년여 기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 5천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호텔 사업 구상은 신 명예회장과 롯데그룹에 대단한 모험이었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광업 자체의 민간투자가 저조한데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신 명예회장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신 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을 오픈할 만큼 성장했다.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

# 롯데쇼핑의 탄생
한국전쟁 이후 경제개발과 국토재건 사업에 집중해온 우리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을 진행했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 욕구와 구매 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백화점은 대부분 영세하고 운영방식이 근대화 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격호 명예회장은 국가 경제의 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백화점 사업에 도전하게 된다.

롯데쇼핑센터(現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만 7,438㎡, 영업면적 1만 9,835㎡에 지하1층, 지상 7층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 백화점에 비해 2~3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시부터 고객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이후 우리나라 1위 백화점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1979년 쇼핑센터 개점.
1979년 쇼핑센터 개점.

# 석유화학 산업으로의 진출
애초에 신 명예회장은 기간산업에 투자해 모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특히 제철사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부가 제철사업은 국영화한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이러한 희망을 접어야 했다.

이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비로소 신 명예회장은 중화학 기업에의 꿈을 이루게 된다. 호남석유화학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이었다. 단지조성 후 정부는 호남석유화학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고, 롯데는 공개입찰을 거쳐 1979년 이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그해 호남석유화학은 여천단지 내 3개의 공장을 완공하고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폴리프로필렌(PP), 에틸렌옥사이드(EO)와 에틸렌글리콜(EG)의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호남석유화학은 케이피케미칼 등 국내 유화사와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 등을 인수하며 롯데그룹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했고,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롯데월드타워
서울 잠실에 테마파크를 포함한 대규모 관광위락시설 ‘롯데월드’를 건설하는 동안, 신 명예회장은 또 하나의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석촌호수 서호를 중심으로 건설되는 롯데월드와 함께, 석촌 동호를 중심으로 종합관광단지(당시 명칭 ‘제2롯데월드’)를 건설해 잠실 지구를 한국의 랜드마크로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복합 관광명소로 키워내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롯데는 1982년 제2롯데월드사업 추진 및 운영 주체로 ‘롯데물산’을 설립하고, 1988년 1월에는 서울시로부터 사업 이행에 필요한 부지 8만 6천여㎡를 매입했다. 그리고 다음해 실내 해양공원을 중심으로 호텔, 백화점, 문화관광홀 등을 건립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서울시에 제출하였으나 일부 조건 미흡으로 반려되었다. 이후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한 지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각종 교통, 도시계획 등의 이유로 사업계획이 잇달아 반려되었다. 단순한 백화점이나 쇼핑시설, 아파트 등을 건설하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는 부지였지만, 신 명예회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를 짓겠다는 일념으로 제2롯데월드의 건설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월드타워 전경.

 그리고 마침내, 2011년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빌딩을 포함하여 80만 5782㎡에 이르는 ‘롯데월드타워’ 전체 단지의 건축 허가가 최종 승인되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2014년 10월 롯데월드몰과 아쿠아리움을 시작으로 시설들이 순차적으로 오픈하였으며, 2017년 4월 3일 롯데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며 초고층빌딩을 포함한 롯데월드타워가 그랜드 오픈하였다. 30여 년에 걸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이자 최대 규모의 쇼핑몰로 탄생한 롯데월드타워는 고용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한편,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며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기업철학>
# 정직한 기업가 정신
산업불모지인 모국에 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사회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일념은 창업 초부터 지금까지 퇴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기업보국'의 정신이 풍요로운 미래생활의 창조로 연결되고 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정직과 봉사, 그리고 정열로 압축된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생산 활동을 통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데 있으며, 이로써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정직한 기업정신이 요구된다. 정직한 기업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열적인 활동 즉, 온 힘을 기울여 매진하는 정성스러운 기업인의 자세가 뒷받침 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시작한 사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부분을 엿보지 않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경영소신은 유명한데 이는 그동안 손을 댄 사업이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최고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월드 등이 모두 동 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업계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 觀光報國 '롯데호텔의 탄생'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준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관광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써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최고층 빌딩으로 1천여 객실을 갖춘 롯데호텔 건설에는 6년여 기간 동안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 5천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당시에는 산업기반이 취약한데다 국내에 외국손님을 불러놓고 대접할 만한 변변한 국제 수준의 호텔도 없었고 관광 상품도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관광업 자체가 부지확보와 투자재원 조달의 어려움, 낮은 수익률, 운영 노하우의 미숙 등으로 민간투자가 저조한데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신 회장은 고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호텔업도 기간산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호텔 건설을 지시했다. 사실 호텔 사업 구상은 신 회장 개인적으로는 모험이었다. 투자한 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기업인으로서 마땅히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목표로 했던 꿈을 고국에 실현한다는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내린 신 회장의 결론은 훗날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롯데호텔서울 전경.
롯데호텔서울 전경.

“한국의 장래를 깊이 생각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신격호 명예회장은 투자 회수율이 낮으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관광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롯데호텔은 이후 올림픽을 즈음해 1988년에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개관하고‘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루는 데에 일조를 하게 된다. 롯데호텔은 92년 업계 최초로 2억 달러 관광진흥탑을 수상하였고 다른 외국계 체인 호텔들과 달리 외국에 한 푼의 로열티도 지불하지 않는 국내 호텔체인을 완성했다.

# 세계최대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건설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은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 시켜야 한다.”

지난 84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다. 당시 롯데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었던 잠실벌에 대형 호텔과 백화점, 놀이시설을 짓는 것이 과연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격호 명예회장은 소신이 있었다. 물론 롯데월드는 성공했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1989년 롯데월드 개관식.
1989년 롯데월드 개관식.

신격호 명예회장은 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였다. 산업훈장은 그때까지 수출기업이나 제조업종에 집중 수여되었으나, 신격호 명예회장이 관광산업을 국가전략 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
“잘하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이 말은 롯데그룹의 경영특징을 잘 대변해 준다. 제품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애정은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실패를 모르는 기업인’이라는 애칭을 붙게 할 정도다.

이처럼 辛 회장은 롯데가 취약한 부분을 집중 보완하거나 롯데가 가장 잘하는 분야에 힘을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신규 사업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고, 핵심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이며, 평소 辛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명실상부한 그룹이 되려면 중공업이나 자동차 같은 제조업체를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건의하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무슨 소리냐, 우리의 전공분야를 가야지”라며 일축했다. 자신 있는 업종을 선택해 이를 전문화·집중화해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동종업계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분야를 넘보지 않는 경영철학도 빚 없는 경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에 최우선
신격호 명예회장은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에는 철저하게 신경을 쓴다. 롯데는 백화점과 롯데월드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설들이 많아 유사시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辛 명예회장은 틈만 나면 현장을 불시 점검하고 사고의 사전예방을 강조한다.

辛 명예회장의 이러한 의지 때문에 호텔과 백화점 등 롯데의 모든 시설물들은 우리나라의 현행 안전법규를 훨씬 초과하여 방재시설과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辛 명예회장의 화재 예방에 대한 관심은 일반인이 보기에 지나칠 정도여서 소방당국도 혀를 내두른다는 평가다.

실제로 辛 명예회장은 롯데호텔이 준공되고 처음 둘러보는 자리에서 담당직원을 불러 복도의 천장을 깨라고 지시했다. 이제 막 새로 지은 건물을 부수라고 한 것이다. 辛 명예회장은 천장에 직접 랜턴을 비춰 보면서 복도와 객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지를 일일이 살펴봤다. 불이 났을 경우 방화구획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또, 辛 명예회장은 호텔객실의 담요와 커튼에 대한 불연성 테스트를 직접 지켜보고, 법규에 관계없이 모든 객실에 가스 마스크를 비치토록 했다.

1987년 롯데월드 상량식.
1987년 롯데월드 상량식.

신격호 명예회장은 야간에도 불시에 복도나 매장 등을 둘러보는데 복도에 약간의 물건이라도 적치되어 있으면 바로 불호령을 내린다. 만일의 경우 대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롯데호텔 본점의 리뉴얼 공사가 한창이던 2001년 11월 새벽, 辛 명예회장은 공사현장에 예고 없이 나타나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야간작업을 하고 있던 인부들에게 화재예방과 안전사고 방지를 당부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호텔임원들에게 24시간 교대로 방재관리 지시를 하기도 했으며, 용접과 절단 작업은 소방전문가가 현장에 참여한 상태에서 하도록 하고, 작업종료 30분 뒤에 필히 용접불씨를 재점검토록 하기도 했다. 신격호 명예회장 현장순시의 첫 번째 관심사항이 화재 등 안전관리에 있는 것이다.

# 기업전체를 고객에게 맞춰라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백화점, 호텔 1번가, 롯데마트, 테마파크를 아우르는 거대한 콤플렉스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신 명예회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간부들은 가타부타 자신 있게 대답을 못했다.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자 신 명예회장은“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오픈을 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거야.”이 말을 들은 간부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 명예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신 명예회장의 예상대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했다.

또 하나 예는 잠실 백화점을 기획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은 신세계나 미도파 매장의 3배 크기인 넓은 매장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이런 걱정을 하자 辛 명예회장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꾸중 아닌 꾸중을 했다.

롯데전경(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쪽)
롯데전경(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쪽)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고객이 원할 때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辛 명예회장은 뜬금없이 평창면옥에서 답을 찾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평창면옥이라고 있었는데 워낙 맛이 있어서 밥 한 끼 먹기 위해 먼 거리에서 차를 타고 올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평창면옥은 5000~6000원 가격에 사람들이 꽉 찼다. 점심시간에는 자가용을 타고 와서 한참 기다리다 밥을 먹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왜 평창면옥에 와서 밥을 먹을까.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서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고객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객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사업이 있는 것이다. 고객이 즐겨 찾게 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 이처럼 辛 명예회장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말고 고객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였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경영어록>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합니다"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합니다. 정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신중해지고 보수적이 되지요. 사업에 책임을 지다보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본 기업인이 신중하게 경영합니다. 나도 그렇게 하다보니까 빚을 많이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국 기업인은 반대로 과감하긴 한데 무모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몸에서 열이 나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집니다. 기업에 있어서 차임금은 우리 몸의 열과 같습니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고객이든 협력업체든, 적어도 롯데와 거래하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합니다.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 세계 최고의 빌딩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 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닙니까. 세계 최고의 건물이란 것 자체가 자동적으로 좋은 광고 선전이 되지요. 무역센터도 될 수 있고 위락시설도 될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그럴 수 있는 자리로서 적합한 곳은 잠실이라고 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관광레저를 21세기 전략산업으로 꼽으며 육성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상품수출을 통한 외화획득 못지않게 관광레저 산업도 외화획득의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계획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관광산업의 외화가득률은 90%가 넘습니다. 제조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업만 좋은 것이고 호텔이나 음식점을 하면 안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관광업이나 유통업도 농사짓는 것이나 수출하는 것에 못지않게 필요한 사업입니다. 잘못된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 베르테르 경영철학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롯데라는 신선한 이미지를 기업명과 상품명으로 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베르테르는 그의 여인 샤롯데에 대한 사랑에 있어 정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정열 때문에 그는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 일 할 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정열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지만, 정열이 없으면 흥미도 없어지고 일의 능률도 없어집니다. 경영자의 정열과 직원 모두의 정열이 하나의 총체로 나타날 때 그 회사는 큰 발전이 기약됩니다. 뜨거운 정열을 갖고 업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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