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세계경제전망❸] 코로나19 팬데믹...키워드로 본 세계경제 위기의 순간들
[Special Report] [세계경제전망❸] 코로나19 팬데믹...키워드로 본 세계경제 위기의 순간들
  • 이소영 기자
  • 승인 2020.03.16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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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경제 대공황, 오일쇼크, 리먼 사태 등 역사속 글로벌경제 위기 집중분석
[사진 = 픽사베이 제공]
[사진 = 픽사베이 제공]

 

코로나19바이러스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전 세계 감염 유행 단계인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경제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블룸버그 등 최근 외신에 따르면 세계 증시는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난 12일 기준 시가총액이 52일 만에 1경9천조가 증발하며 그야말로 패닉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 증시도 지난 13일 장 시작과 함께 급락이 이어지며 이틀 연속 사이드카 발동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이 이제 시작되는 상황에서도 글로벌 경제의 이 같은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코로나19사태는 과거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과 함께 전 세계 경제를 위협한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글로벌 경제를 위기에 빠트린 대사건들을 정리했다.

# 1929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전 세계 최강국인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영향력이 컸던 경제위기로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지속됐다. 1929년 미국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발발된 이 경제위기는 그 영향력이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끼쳤던 만큼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재난으로 꼽히기도 한다.

1929년부터 약 4년간 지속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 전체의 공업생산력 약 44%, 무역 약 65%가 저하했고 가업파산 수십만 건, 천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를 발생시켰다. 공업생산뿐 아니라 농업과 금융 부문의 타격도 매우 커서, 농산물의 가격폭락, 각국의 금본위제 정지 사태가 잇따라 일어났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뉴딜정책을 도입했고, 영국·프랑스는 식민지 시장에 의존하는 블록경제권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 선진 자본주의국과는 달리 식민지도 거의 없고 국내시장도 작은 일본·독일·이탈리아 등은 군국주의로의 길을 걸었다.

즉, 군수물자 생산에 주력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식민지를 확보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파시즘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했다. 식민지를 둘러싸고 경제블록권과 군국주의권으로 나누어진 자본주의국가들의 대립은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다.

# 석유파동(오일쇼크/ Oil Shock)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1973∼1974년 중동 전쟁(아랍·이스라엘 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과 1978∼1980년의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의 대폭 감축으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은 사건을 말한다.

오일쇼크 또는 유류파동이라고도 한다. 제1차 석유파동은 석유의존도가 심한 여러 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다. 원유가격은 1973년 10월과 1974년 1월의 인상조치로 약 4배 가까이 급등하였다.

세계경제 전체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져 1975년에는 서방 선진국은 마이너스성장을 하게 되었고,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으며, 국제수지도 대폭적인 적자를 기록하였다. 1974년 석유수출국기구 국가의 경제수지 흑자액은 6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제2차 석유파동 기간인 1978년 12월부터 1980년 7월 사이에 석유가격은 약 2.4배(배럴당 12.9달러에서 31.5달러로) 급등했고, 다시 세계경제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왔다. 생산비용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고, 세계 각국의 성장률은 둔화되었으며 무역수지는 악화되었고, 국제금융과 통화질서는 교란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해외 의존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제1차 석유파동으로 불황 속의 물가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1975년 소비자 물가는 전년대비 24.7% 상승하였으며, 국제수지는 18.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또한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행에 있어서도 상당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석유파동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1974년 1월 14일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를 단행하면서 자금수요를 억제하는 동시에 자금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통화금융정책도 함께 추진하였다.

이후 1974년 5월, 장기 에너지종합대책을 수립·발표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1973년부터 경제성장과 수출신장의 한계를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돌파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1974년에는 국민투자기금을, 1976년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을 설립하여 금융측면에서 지원하였다.

# 리먼브라더스 사태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다. 리먼 파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파산 보호를 신청할 당시 자산 규모가 6390억달러였다.

리먼 파산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후유증으로 우려만 무성했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실화된 상징적인 사건이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과도한 차입과 악성 부실자산으로 촉발된 리먼사태의 영향은 전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2007년부터 시작된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과 이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지목된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정상 대출이라 할 수 있는 프라임 대출보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을 말한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은 9·11사태 이후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이를 이용하여 주택대출을 확대하였고,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신용과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주택 자금을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도 활발하였다.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통해 구입한 주택의 저당권을 활용해 ‘주택저당증권(MBS)’이라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냈다.

MBS는 쉽게 말해 집의 저당권을 재판매하는 금융상품으로 미래에 받을 채권을 미리 현금화하는 일종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이다. MBS는 다시 채권과 섞어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만들어냈다.

MBS와 CDO는 각종 채권의 출처를 파악해 내기 힘들고, 리스크를 미리 발견해 내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던 중 경기과열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2006년 6월 기준금리를 5.25%까지 인상하자,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는 높은 이자 부담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파산하여 길거리에 내몰렸다.

이 같은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는 MBS·CDO 등 파생금융상품을 사들인 리먼 브라더스를 포함한 전 세계 금융회사를 순식간에 파산위기로 내몰면서 10여 년에 이르는 장기 글로벌 금융위기에 봉착하였다. 또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미국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투자 손실로 19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가계 자산이 증발하였다.

<자료 출처 : 기획재정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시사상식사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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