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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한진그룹 창업주 故 조중훈회장이 그린 열정지도 ... ‘사업은 예술이다’ 평전 출간
[분석]한진그룹 창업주 故 조중훈회장이 그린 열정지도 ... ‘사업은 예술이다’ 평전 출간
  • 김 욱 기자
  • 승인 2015.12.18 0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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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육해공 종합수송그룹, 한진그룹을 일군 고(故) 정석 조중훈 창업주(1920~2002)의 삶과 경영 철학을 담은 평전이 나와 눈길을 끈다.

굴곡진 현대사를 거치며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일대기는 제목처럼 마치 한편의 예술 드라마 같다.

실제로 조 전회장은 1945년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의미를 담아 인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건 이래 대한항공, 한진해운, 한진을 주축으로 한진그룹을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난 11월1일 한진그룹은 창립 70주년을 맞아 신용 하나로 사업을 시작한 청년 조중훈의 도전과 열정, 수송보국의 창업 정신과 경영 철학을 되새기기 위해 전기 출간을 준비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1일 “이번 전기 출간은 창업주의 업적을 통해 그룹의 성장의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대한민국 교통·물류 산업의 발전사를 조명하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말했다.

책을 쓴 이임광 작가와 함께 ‘사업의 예술가’ 조중훈 회장이 평생에 걸쳐 닦아놓은 길을 걷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땅길, 바닷길, 하늘길을 따라 일제강점기 절치부심 주경야독하던 식민지의 소년과 원대한 꿈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는 소년, 상하이에서 인천항으로 푸른 꿈을 싣고 돌아오는 청년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베트남 퀴논항에서 사선을 넘는 전설의 수송용사들과 항공의 불모지를 이륙한 파란 점보기가 죽의 장막을 뚫고 만리장성을 넘어 파리로 날아가는 가슴뭉클한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성장기와 마주할 수 있다.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는 조중훈 회장의 어린 시절과 한진상사 창업 과정을 그린 <파도마저 삼킨 오디세이>, 베트남 전장에서의 숨막히는 수송작전을 담은 <퀴논의 전설>, 한진그룹 도약 계기가 된 대한항공공사 인수와 항공사로서의 발전 과정을 그린 <하늘길을 열다>, <대한의 날개에서 세계의 날개로>를 비롯해 <해운왕 꿈을 이루다>, <수송외길을 위한 변주곡>, <열정의 민간 외교가>, <인재의 숲을 가꾼 정원사>, <인생과 사업의 예술가> 등 총 9장 392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 1950년대 조중훈 회장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 있었다. 조중훈 회장은미군이 인천항으로 반입해 수십만 평 규모의 부평 보급창을 거쳐 의정부, 동두천 등지의 부대로 운반하는 군수품에 주목했다. 하지만 당시 미군은 한 트럭에 몇 만 달러나 되는 군수품의 수송을 한국 업체에 선뜻 맡길 수 없었다.

 

■ 소년은 바다를 꿈꾸었고 바다는 소년의 꿈을 품었다.

‘주경야독으로 단련한 소년은 기관사가 되어 중국으로 간다. 상하이에서 본 중국의 바다는 일본의 바다보다 넓었다. 세계인이 몰려드는 그곳에서 그는 '지금은 일본 배를 타고 왔지만, 언젠간 나의 배를 타고 오리라!' 다짐한다.' <파도마저 삼킨 오디세이>중에서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해원양성소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기술을 익힌 소년 조중훈은 일본 조선소의 수습기관사로 발탁되어 열입곱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도 타고난 성실함으로 낮에는 작업장에서 기술을 익히고, 밤에는 하숙방에서 독서에 몰두했다.

이후 외항선의 선원이 되어 중국 상하이와 홍콩 등을 항해하며 '손님의 마음을 읽는' 유대상인의 장사법과 '철저한 품질관리'라는 개성상인의 정신을 배운다. 세계문물을 접하며 사업의 철학을 마련한 조중훈 회장은 1945년 11월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의미를 담은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 전쟁과 그림은 멀리서 봐야 한다. 사업은 더 멀리서 봐야 한다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니다. 조중훈은 그것이 기회임을 포착하고 모든 걸 걸었기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전쟁과 그림은 멀리서 봐야 한다. 멀리서 봐야 한 폭의 그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쟁도 전투만 보아서는 안 되고 전장을 둘러싼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퀴논의 전설>중에서

한진그룹은 월남전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조중훈 회장은 1965년 12월 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으로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동남아 순방을 하면서 사업상의 중대한 계기를 맞게 된다.

마지막 방문지였던 베트남의 퀴논 항에서 하역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외항에 정박 중인 30여 척의 화물선들을 보는 순간, 한진상사가 퀴논항의 군수품을 하역·수송하면 큰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 조 회장은 펜타곤을 방문하고, 퀴논에 파병중인 미군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1966년 주월 미군사령부와 790만 달러의 군수물품 수송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1971년 종전 시까지 5년간 벌어들인 외화는 총 1억 5천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25~200달러 안팎으로 한진이 벌어들인 외화가 얼마나 큰 금액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1969년 3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모습. 조중훈 회장은 여러 번 당국의 대한항공공사 인수 요청을 고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용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다”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아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를 결정했다.

 

■ 일생일대의 모험... 세계의 하늘길을 연 '대한의 날개'

‘적자투성이 국영 항공사를 구할 사람은 조중훈밖에 없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대한항공은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항공이었지만, 조중훈은 기왕할 거라면 예술처럼 하고 싶었다. 그 시절 한국에서 항공사를 운영하고 성장시킨다는 것은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했을 때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육중한 쇳덩어리가 새처럼 하늘을 날아오른 것처럼 그는 척박한 땅에서 고사 직전의 항공사를 이륙시켰다.’ <하늘길을 열다>중에서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는 데는 사업가로서의 자질과는 별도의, 또 다른 의미의 결단력이 필요했다. 당시 대한항공공사는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11번째가는 부실 투성이의 항공사였고, 당시로선 항공운송 사업의 미래도 불투명했다.

정부는 조 회장이 ‘한국항공’을 설립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 동안의 사업 과정 및 수송산업의 월남 진출을 통해 알려진 추진력과 애국적인 열정 등을 감안해 조중훈 회장을 대한항공공사 사업자로 주목하고 있었다.

조 회장은 여러 번 당국의 대한항공공사 인수 요청을 고사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용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나라 국적기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다”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아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고 있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조 회장은 당시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에게 “돈을 벌자고 시작했다가 밑지는 사업도 있고,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임을 강조했다.

■ “선장이 키를 놓지 않는 한 전진하는 배는 흔들리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로 한진해운을 완전히 바꾸어야 했다. 조중훈은 하늘에서 얻은 경험을 바다에서 구현하리라 마음먹었다. 항공사의 경영기법을 해운사에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세계 해운 역사상 유례가 없는 회기적인 구상이었다.’

‘기업재건이 탄력을 받으면서 휘청하던 한진호는 다시 균형을 잡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항공사의 장점으로 재무장한 한진호는 하늘을 나는 배로 환골탈태했다.’<해운왕 꿈을 이루다>중에서

조 회장은 1987년 11월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선주를 한진이 인수할 것을 권유 받자 ‘유일한 육·해·공 종합수송기업으로서 한국의 수송업체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면서 타산적인 차원으로 관계자들의 고뇌와 업계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대한선주를 인수하여 한진해운과 합병했다.

대한선주의 채무까지 떠안은 한진해운은 선박별 운항스케줄, 예약현황, 화물추적 등의 업무전산화 및 선원들의 근로조건 개선 등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인수 2년만인 1989년에는 경영정상화를 이루어 126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 모르는 사업은 손대지 않는다. 조중훈 회장의 ‘수송외길’

‘모르는 사업은 절대 손대지 않겠다’며 조 회장은 수송외길을 고집했다.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수송외길을 걸으려고 해도 당시 국내 기간산업은 걸음마 수준이었다….’

‘조회장은 우리나라가 물류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함을 절감했다. 인천항 건설, 공항청사 확충, 영종도 신공항 건설, 전천후 항공유 수급 시스템 구축, LPG충천소 설치는 그런 의지와 안목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한일개발은 움라지 고속도록 공사에서 큰 손해를 감수하고 신뢰를 지켰다. 이는 훗날 한국 건설업체들의 중동 진출에 밑거름이 되었다.’ <수송외길을 위한 변주곡>

한진그룹이 설립하거나 인수한 회사들은 수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이를 보조할 수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조 회장이 평생 한눈을 팔지 않고 전문분야에 집중하는 수송외길 인생을 살아왔음을 엿볼 수 있다.

■ 배움에는 때가 없다. 장소도 없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인하공대를 인수하는 것이 수익은 커녕 얼마나 비용이 들어갈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모한 투자였지만 그는 교육을 두고 계산하지 않았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은 조중훈은 대학교육이 캠퍼스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이유도 없다며 사내대학을 설립했다. 어린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던 조에게 배움은 평생 애틋함이었다…’<인재의 숲을 가꾼 정원사>

조 회장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업보국을 이룩하려는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하는 소명으로 여겼다. 인재의 숲을 가꾼 정원사 조회장에게 일평생 가장 뜻있는 사업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었다.

▲ 해운사 설립을 준비하던 조중훈 회장은 1977년 초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항공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육상운송과 항공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해운 발전에도 힘써 달라”는 격려를 받는다. 이에 조중훈 회장은 컨테이너 선사 설립을 1년 앞당겨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하고 바다로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사진은 1990년 한부호 진수식 모습.

 

■ 마음을 낚는 리더... 인간미 있는 사람에겐 사업도 예술이다

‘그가 마음을 사려하면 누구라도 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언어’로 소통하고 교감했기에 가능했다. 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환경에서도 ‘지고 이기는’ 지혜와 미덕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대성공을 거두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

‘수송외길을 고집하며 매진한 것도 자신의 사업에서 최고의 작품을 창조하려는 장인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과 사업의 예술가>중에서

조 회장은 평소 “사업은 지고도 이기는 것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이다”라는 말을 즐겨 했다. 한진이 주한미군 용역사업에 참여한 1956년 무렵 ‘지고도 이긴다’는 조중훈 회장의 사업 신념이 빛을 발휘한 일화가 있다.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겨울파카 1300여 벌을 차떼기로 남대문 시장에 팔아 넘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조 회장은 직원 한 명을 남대문 시장에 상주시키고 도난 당한 물건이 시장에 유통되면 전부 사들이도록 했다. 이는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봤지만 미군들로부터 확고한 신용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한진의 문제 해결 능력과 신용을 지키려는 열의를 본 미군들은 그 후 한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로써 조중훈 회장은 당장 3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큰 금전적 손해를 봤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용을 얻었다.

전기에는 조 회장이 ‘수송보국(輸送報國)’ 신념으로 걸어간 ‘신용의 길’, ‘지혜의 길’, ‘애국의 길’, ‘외교의 길’, ‘교육의 길’에서 신념과 창의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발자취들을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베트남 퀴논항 하역 현장 및 한일경제외교, 국산전투기 제작 등과 관련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일화와 진귀한 사진들도 다수 수록되어 대한민국 경제/외교사적으로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과 교분이 두터웠던 손길승 전 전경련 회장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추천사를 썼다. 손 전 회장은 “세상에 철학이 아름다운 경영서는 그리 많지 않다”며 “조중훈 전기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이야기인 만큼 사업가로서, 기업가로서, 경영자로서 길을 잃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일독을 권했다.

이 전 총리 역시 “이 책을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젊은이들, 특히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학생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그것은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독서광, 조중훈 회장의 바람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조중훈의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사업과 인생의 예술가는 모든 것을 잊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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