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홍콩의 미래❷] 동양의 진주 ‘홍콩’ … 역사속에 비친 속살
[Special Report][홍콩의 미래❷] 동양의 진주 ‘홍콩’ … 역사속에 비친 속살
  • 이소영 기자
  • 승인 2020.07.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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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본, 영국 거쳐 다시 중국 품으로 … 국제경제도시 위상 되찾을까
국제경제도시 '완구' '의류' '전자부품' 수출강국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중국의 홍콩 보안법 시행과 홍콩에 대한 미국의 특별대우가 박탈되며 미-중 갈등이 격화일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결과적으로 동양의 진주이자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경제 도시 중 하나였던 홍콩의 위상과 과거의 모습은 이제 역사 속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1942년 중국과 영국과 체결한 '난징조약' 이후 식민지 시절을 거쳐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경제 도시로의 성장, 1997년 홍콩반환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홍콩의 발전사를 살펴본다.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 영국과 일본식민지, 다시 영국에서 중국으로 … 파란만장한 역사

홍콩은 일찍이 당나라오 송나라 당시 무역항과 해군 기지로써 활용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1841년 아편전쟁이 일어나 영국이 홍콩섬을 점령했을 때 만해도 소수의 중국인과 수상생활자들이 정착했던 외진 섬이었었다.

아편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842년 영국과 중국 청나라 사이의 홍콩섬의 영구 할양을 인정하는 난징조약이 체결되며 홍콩은 영국령 식민지로 편입됐다. 이때만 해도 홍콩섬은 발전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돼 영국 의회에서는 포기하자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1860년 1차 베이징조약으로 주룽반도를 분할하고, 1989년 2차 베이징조약으로 신제와 부속도서를 99년 동안 조차하게 되면서 오늘날 홍콩의 경제 부흥을 닦는 토대가 닦이기 시작했다.

1905년에는 주룽과 광둥을 잇는 철도가 이어지고 화교들의 이주가 활발해지며 발전하기 시작해 1861년에 약 12만 명 이었던 인구가 1939년에는 160만 여명으로 급증하며 경제 또한 빠르게 성장했다. 이 당시 영국식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며 아시아의 영국령 중에서 가장 빅토리아 문화가 개회된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1941년에는 일본국에게 침략당하면서 영국과 캐나다군이 식민지 지배권을 일본에게 내줬다.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이어졌던 일본 식민지 시절의 홍콩은 전쟁을 위한 수탈의 영향으로 극도의 식량부족과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전쟁 전 홍콩의 인구가 160만 명이었으나 영국이 식민지 지배권을 회복한 1945년 8월에는 100만 명이 감소한 6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1978년 중국이 경제개혁안을 시작하면서 홍콩이 중국 본토로의 외국인 투자의 주요 공급원이 됐다. 이듬해 특별경제 구역으로 지정되며 제조업과 섬유에서 서비스 업종으로 주력 산업이 점진적으로 대체됐다.

1984년 12월 19일 영국과 중국은 홍콩반환협정을 체결, 1997년 7월 1일을 기하여 155년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이로써 홍콩은 세계사상 최초의 1국가 2체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홍콩은 중국의 대서구(對西歐) 협력의 중계지로서, 근대화를 위한 남쪽 창구로서 기능해왔다.

# 국제경제도시 '완구' '의류' '전자부품' 수출강국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홍콩은 국제경제의 대도시로 원래 중계무역을 위주로 하였으나 195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조립업과 가공공업 분야를 발전시켰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전자공업 발전에 집중하였다. 오늘날 홍콩의 공업 가운데 제조업과 금속업 분야는 관광업, 부동산업과 함께 홍콩 경제의 4대 기둥으로 꼽힌다. 소형 공장 및 노동집약형이 대부분이며, 방직·재봉·전자·시계·합성수지·고분자 합성소재 제품과 전기 기기를 위주로 하는 수출가공 공업시스템이 형성되었다.

기술집약형 공업화와 상품 우수화로 변환을 꾀하여 방직·재봉 및 의류 공업은 홍콩 공업의 최대 부문으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의류 수출지역으로 발돋움하였다. 중공업 부문은 통용기계와 조선 수선 및 건축용 강철, 시멘트 제조를 위주로 하는데 공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은 편이다. 의류·완구·플라스틱조화 등의 수출액이 세계에서 1위이며, 시계·라디오 등은 세계에서 수출량이 가장 많다.

특산품으로는 완구가 유명하며, 1972년부터 줄곧 세계에서 수출 1위를 지켜왔다. 의류 분야에서도 패션화·고품격화·다양화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의류 공급기지로 발돋움하였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마이크로프로세스 기술의 발전에 발맞추어 전자산업도 세계시장의 수요 추세에 부응하는 제품이 많이 생산하여 의류·완구와 더불어 홍콩의 3대 수출 명품브랜드로 꼽힌다. 또한 세계의 먹을거리가 집결된 곳으로서 홍콩의 인스턴트 푸드[快餐]를 비롯하여 광둥[广东] 요리와 차오저우[潮州] 요리, 서양 요리, 일식 요리, 베트남 요리 등이 번성하고 있다.

# 관광, 쇼핑의 천국 '홍콩'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화려한 야경의 도시 홍콩. 먹거리와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 자유 여행을 하기 좋은 도시다. 쇼핑과 함께 야시장 투어가 유명하고, 빅토리아 파트에서 바라보는 도시 야경은 필수 관광코스다. 홍콩은 특히 음식이 유명한데,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음식점을 가지고 있다. 딤섬과 밀크티가 대표적으로 유명한 음식이며, 광둥요리부터 중국 각지의 본토요리를 모두 만나볼 수 있다.

홍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적 관광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도시가 번화한데다 풍경명승지도 많다. 홍콩섬의 타이핑산[太平山]에 있는 산정공원(山顶公園)에서는 홍콩섬을 비롯하여 주룽[九龙]과 빅토리아항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홍콩섬 남부의 선수이완[深水湾] 연안에 조성된 해양공원에는 해양동물박물관과 수륙놀이공원으로도 유명하다.

홍콩은 누구나 인정하는 쇼핑의 천국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무역의 중심지로서의 역할 을 해 온 덕에 다양한 상품들이 세계 어느 곳보다도 빨리 홍콩에 들어와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상품 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홍콩쇼핑의 매력은 무엇보다 전 지역이 ‘면세지역’이란 점이다. 홍콩에서 쇼핑하기에 좋지 않은 시기는 결코 없다. 홍콩의 위축되지 않는 비즈니스 분위기로 인해 쇼핑은 일상화됐으며, 그 현상은 1년 내내 지속된다.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특히 대규모 세일이 이뤄지는 겨울과 여름철에 홍콩인들의 쇼핑 열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쇼핑홍콩관광진흥청이 주관하는 쇼핑 페스티벌 기간에는 홍콩 각 지역의 쇼핑몰과 숍에서 특가판매와 세일을 한다.

외식, 음식 프로모션을 함께 진행하며, 레스토랑은 평소보다 밤늦게까지 영업한다. 상점은 오후 10시까지 연장 오픈한다. 홍콩에서 세일 기간의 시작과 끝이 딱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12월부터 2월까지라고 생각하면 되고, 특히 크리스마스와 그 전, 또한 중국 설날 이전이 피크라고 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의 패션 신제품들이 이 때 세일을 하기도 한다.

먹거리, 볼거리, 쇼핑으로 전 세계 많은 여행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홍콩. 화려했던 그 역사가 지속될지, 아니면 이제 다시 보지 못할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아있을지. 2020년 7월 그 기로에 서 있다.

자료 출처 : 홍콩관광진흥청, 외교부, 두산백과, 시사상식사전 등

[사진 = 픽사베이 제공] 특정기사와 직접관련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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