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Interview] 화가 서숙양 “ ‘금(金)’은 곧 '빛' 이며, 제 작품세계의 중심입니다”
[PowerInterview] 화가 서숙양 “ ‘금(金)’은 곧 '빛' 이며, 제 작품세계의 중심입니다”
  • 이승진 기자
  • 승인 2020.07.26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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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빛 생각...“금이 빛을 가장 잘 표현”
“금(金) 작업 하는 작가가 아닌 빛 작업을 하는 작가로 인정받고 싶다”
서숙양 화가가 지난 22일 비즈니스리포트와 인터뷰를 갖고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등을 얘기하고 있다.
서숙양 화가가 지난 22일 비즈니스리포트와 인터뷰를 갖고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등을 얘기하고 있다.

 

인터뷰 : 김재홍 편집국장ㅣ 정리·사진 : 이승진 기자

화가 서숙양(50) 작가는 빛을 표현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아티스트다.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순금(金)’ 만큼 빛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물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30대 중반에 생사를 오가는 암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난 그녀는 그동안 ‘호박’을 주제로 활동해왔지만 최근엔 캔버스에 순금을 입혀 빛을 표현한다. [비즈니스리포트]는 서숙양 화가를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에서 만나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들어봤다.

-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는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다. 평생을 화가로 산다는게 싶지않을것 같은데, 서작가는 그림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저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너무 좋아했고, 당시 한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큰 미술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래서 ‘난 진짜 천재다’ 란 착각 속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그 후 입시미술 준비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 꿨던 게 화가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입시생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화가의 길과는 다소 벗어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화가의 길을 언젠가는 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게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된 동기였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라는  열망을 갖게됐고, 3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내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했다.”

서숙양 화가가 지난 22일 비즈니스리포트와 인터뷰를 갖고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등을 얘기하고 있다.
서숙양 화가가 지난 22일 비즈니스리포트와 인터뷰를 갖고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등을 얘기하고 있다.

 

- 호박을 주제로 많은 작품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안다. 왜 호박인가.

“처음에는 정물화나 풍경화로 그림을 시작했다. 저는 유독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컸다. 어머니가 늘 해주시는 음식 중에 호박을 재료로한 요리를 많았다. 또 하나는 내가 기독교인이고 종교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내가 받은 재능을 드릴 수 있는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게 뭔가 있나 생각했던 게, 추수 감사절에 내 작품으로 엽서 시안을 만들었었는데 거기에 그렸던 게 호박이었다. 당시 ‘아 내가 감사의 의미로 드릴게 호박그림이었구나’ 라고 깨달았다. 처음에는 조금씩 그린 게 몇 년이 지나니까 호박작가라는 명칭이 붙었다. 특히 늙은 호박 시리즈를 택한 이유는 가장 원숙한 아름다움을 가진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호박 자체가 1년 생이고 잎부터 씨앗까지 다 내어준다. 어머니의 사랑, 그런 점에서 많이 정감이 갔다. 어머니가 호박죽을 쑤어주고 호박꼬지 등 환경적인 게 컸다. 가장 크게 자랐을 때의 호박의 풍요로움이 내가 내어드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 지난 2018년 경상남도 거제도에 호박을 디자인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업계에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 몰려온다. 당시 거제도에 설치된 작품은 가로 6미터 세로 5미터 대형 구조물이다. 당시 지자체에서는 그늘막 형식을 원했다. 하지만 그늘막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으로 천막모양인데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거기 바닷가가 선착장 같은 곳인데 선착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게 캔버스처럼 느껴졌다. 캔버스에 그림을 담고 싶다. 그 영감을 얻어 작품을 설치했다. 오랜 동안 회자가 된 것으로 안다.”

- 작가로서 가장 선호하는 색을 하나 꼽든다면.

- 블랙이다. 왜냐하면 블랙이 바탕으로 쓰일 때 옐로우나 빛을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베이스다. 그래서 블랙은 삶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토대. 바닥. 캔버스는 삶이다. 그 위에 빛을 놓아주는 것은 우리의 인생,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옷 중에 가장 많은 것도 블랙 옷이다. 가장 많이 쓰는 물건들도 블랙이 많다. 가장 절제된 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색을 혼합하면 블랙이다.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색이다. 무엇이든 블랙은 밑바탕이 된다.”

-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꽃길만 걷게 되는 게 아니다. 살면서 큰 고비가 하나쯤 있을 것 같은데. 그 고비가 서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30대 중반에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후반쯤에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혹시나 싶어 병원 검사를 했는데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임파선까지 전이가 돼서 항암치료를 받게 됐다. 3박 4일 동안 밀폐된 공간, 방사선실에 들어가야 되는데 외부차단 금지고 3박 4일 온전히 나 혼자 있어야 했다. 그때 내가 가지고 들어간 게 도화지. 수채화 물감. 일기장. 그리고 성경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수술이 잘 끝났고, 항암치료가 잘 마무리되면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암이라고 말해줬을 때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했다. 왜냐면 새로운 삶을 나한테 다시 주시는 구나.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알려주시는구나. 그런 새 삶을 받았다.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버킷리스트를 백 몇가지 쓰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이 너무너무 하고 싶었고 남편 공부 뒷바라지를 하면서 남편이 사회적으로 성공해 있을 때 ‘서숙양이라는 작가는 어떤 이름으로 남아 있을까’ 라는 내 삶에 고민을 했었다. 그래서 대학원(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석사(M.F.A)을 진학했다. 버킷리스트 첫 번째가 대학원 진학이었는데 40 초반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걸 안 후 오히려 전의 삶보다 더 분주하게 산다.”

서숙양 화가가 지난 22일 비즈니스리포트와 인터뷰를 갖고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등을 얘기하고 있다.
서숙양 화가가 지난 22일 비즈니스리포트와 인터뷰를 갖고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계획을 등을 얘기하고 있다.

 

- 화가가 아닌 자연인 서숙양의 삶은 어떤가.

“단조롭다. 이(스튜디오)밖을 나가는 순간 엄마고 아내이고, 자식이고. 그래서 밖에 나가면 가족위주로 산다. 어머니가 7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약속한 게 아버지를 잘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내 작품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암에 걸렸을 때보다 더 깊이 깨달은 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의 싸늘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 정말 나한테 소중하고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다’라는 걸 깨달았다. 가족위주. 특히 아버님 위주로 삶의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다. 항암치료후 내 인생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었다. 스튜디오에 있는 시간이 12시간 이상이고 최소한의 시간에 가족들을 위해 사는 것이다.”

- 그림의 주재료가 순금이다. 왜 순금인가.

“그냥 캔버스에다가 어떤 물감으로도 빛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흰색 같은 경우 빛에 하이라이트를 줄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빛을 표현하기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가 빛이 있으라’ 였다. 그 빛이 있으라는 햇빛 달빛이 아니라가 아닌 ‘빛’이 있으라 한마디였다. 햇빛과 달빛 모든 걸 어우르는 말이었다. 그 빛 안에 생명이 있었고 우리가 있었다. 그 말씀에 영감을 받았다. ‘하느님의 빛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때 떠오른 게 ‘순금’이었다. 순금으로 빛을 표현하는 작업을 한거다. 가끔 주변에서 오해를 하는데, 나는 금 작업을 하는 작가가 아닌 빛 작업을 하는 작가다. 금 자체는 색도 변하지 않고 어떤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나. 심리적이고 생리적인 걸 생각했을 때 빛이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가. 그런 것들이 과학적으로도 중요하고 우리가 정말 빛 없으면 죽는다고 할 정도로.. 그러다 보니 금을 쓰게 됐다.”

- 순금을 주재료로 쓰다보면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다. 작품 작업 순서도 복잡할 것 같은데.

“처음에 크게는 2가지 작업을 한다. 밑바탕 작업을 먼저 한다. 밑바탕안에도 빛이 이미 들어가 있다. 물감을 쌓아 올리고 긁어내고 반복한다. 최소 1개월에서 6개월까지 마르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 작업이 이미 빛 작업이고 거기에 한 가지 색으로 덮어나가면서 밑에 색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밑바닥 작업을 한 후 순금으로 빛 작업을 시작한다. 빛 작업을 할 때 의료용 시술도구를 사용을 정도로 정교함이 요구된다. 그걸로 한 번 앉으면 12시간 이상 앉아있다. 한 번 손을 대면. 순금 금박이다보니 날린다. 어떤 바람이나 외부적인 영향도 받으면 안 된다. 숨도 크게 쉬면 안 되서 마스크를 쓰고 선풍기. 에어컨 이런 것도 안 된다. 창문도 열어사도 안된다. 그래서 한여름에 굉장히 고된 작업이다. 양손에 핀셋을 들고 작업을 한다. 작은 금작업도 며칠 혹은 몇 주이상 한 달 이상 들어갈 때가 있다. 작업하면서 토하고 싶을 정도가 많고 회전근도 손상 되서 치료중이다.”

-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빛을 찾고 싶다. 빛에 머금고 싶다. 사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빛 생각만 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빛이 회전도 하고... 그냥 혼자 있던 누구랑 대화를 하면서도 밖의 풍경을 보면 ‘아 빛이다’. 이런 느낌. 그런 빛이 계속 여러 가지 모양으로 머릿속에서 맴돈다. 지금도 앞으로도 쏟아져 나올 작업들이 막 나온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너지가 더 생기고 비단에 있다는 느낌이다. 그냥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태초의 빛이지 않나.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느낌이다. 빛은 에너지의 근원이고 힘의 원천이다.”

- 작품에 쓰이는 주 재료를 순금이 아닌 다른 소재로 바꾸려는 시도는 안 해 보았나.

“다른 걸로 바꾸려고 은 작업도 했었다. 금빛 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금을 따라올 수가 없다. 그동안 조형물과 건축, 회화도 해왔다. 흙작업으로 도판작업도 했었고. 그러다보니 캔버스의 영역에서 벗어난 작업을 하고 싶었다. 이런 느낌에서 답답해 하던 차에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금을 만났다. 거제도에서 작업하면서 2년 동안 그 곳에서 작업했는데 빛을 더 충만하게 받았다. 노란색이나 화이트 컬러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더라. 전체적으로 바탕이 어둡지만 그건 이미 빛이다. 그 안에 빛을 머금고 있으니”

 

-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고 귀하겠지만 유독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프롬더 라이트’ 라고 명명한 작품이다. 빨간색(금) 6개월 넘게 작업을 했다. 느낌을 내기까지 바닥에 동양적인 느낌을 내고 싶었다. 그 위에 금으로 작업을 한 이후로 금 작업을 하고 다 긁어 낸거다. 천 번의 선을 그었다. 천 번의 선을 긋는 동안 안쉬고 그었다. 그건 동양의 천년의 시간. 기독교 적으로도 예수님의 일생 이후로 천년 이 천년 계속 가는.. 기독교 적인 철학과 동양적인 철학이 복합적으로 다 들었다. 작품 이름은 ‘프롬더 라이트’ 빛으로부터. 가장 가운데가 빛의 정점이라면 빛이 확산되는 걸 이야기 하는 거다. 가장 에너지를 가장 쏟은 작품이다. 두 시리즈로 했는데 한 작품은 어떤 분이 소장하고 싶다며 구매해 갔다. 컬러도 내 맘도 쏙 든다. 컬러나 밑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빛에 보여 지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색으로 인지하고 색으로 명명해서 색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게 빛인거다.”

- 작품 활동을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는다. 특히 흙작업(도자기 세라믹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호박작업을 하다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게 답답하던 차에 흙을 만났다. 그림이 왜 캔버스여야 하는가 고민하다가 뭔가 새로운 재료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싶었던 게 도자기, 흙이었다. 기계가 아닌 손으로 다 하고 롤러로 도판 회화를 다 만들었다. 큰 작품은 70cm짜리도 있다. 도판 회화 작업을 하면서 흙을 만졌을 때의 감촉이 처음에는 차가운데 만져주면 만져줄수록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그걸 통해서 내가 섹슈얼리티적으로 말을 하자면 오르가즘 같은걸 느꼈다. 그러면서 회화의 확장의 문이 확 열린 느낌이었다. 그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회화로 돌아갔을 때 추상이 나왔고 금이 나왔다. 상감기법을 통한 것이다. 홈을 파서 다른 색의 흙을 집어넣는 작업인데. 전통적인 기법으로만, 동양적인 걸 무시못한다 생각했고 동양의 미를 중시여기는 사람이다. 동양의 기법과 미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 나뭇잎이나 조개껍데기 소성을 시키면 재로 남으면서 흙 위에 착색이 된다. 그러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색이 나오게 된다. 도자기 작업을 한 이후로 조형물과 건축물을 하게 됐다. 이 작품이 하나의 추리소설 같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고 각자가 추론해내고 결과를 얻어내고 그건 관람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그동안 많은 작품전시를 해왔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는다면.

“임페리얼 팰리스에서 2019년 6월과 10월 개인전을 두 번을 했는데 어떤 분이 오셔서 내 작품을 보고 감동받아 펑펑 울었다. ‘21세기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이었다. 예수님과 12제자인데 가롯 유다 가 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추상으로 작업한 그림이었다. 이는 물질만능 시대에서 우리와 가롯 유다 와 다를 바 없다 라는 생각에 작업을 한 건데 그걸 설명하던 중 감동을 받으셔서 그 분이 펑펑 우셨다. 그 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500개의 브로슈어를 찍었는데 다 나갔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고, 많은 감동을 받고 가셨다. 그때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감동을 받았다.”

- 앞으로의 전시 계획은.

“올해는 8월에 부산 바마(bama) 아트페어에 임페리얼팰리스호텔 내 갤러리포월스 소속으로 나간다. 홍콩 싱가폴 등 해외전시 계획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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